할머니는 이번 여행을 잊지 않겠다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월평빌라' 이야기-30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08-09 13:43:36
여행을 보름 앞두고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할머니 댁 간다는 말에 성윤(가명) 씨는 ‘마트 주세요.’하고, ‘할머니, 고기, 삼겹살’이라고 적었습니다. ‘마트에서 삼겹살 사서 할머니 댁에 가자’는 뜻으로 짐작합니다.
“아이고, 우리 윤이 왔나?”
할머니는 마당에서 손자를 맞았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할머니 댁까지 가는 길은 성윤 씨가 안내했습니다. 성윤 씨는 종종 할머니 댁에 다녀옵니다. 하룻밤 자고 올 때도 있고요.
할머니 집에 올 때 맛있는 거 많이 사오라 하셨지만 정작 손자가 오니 손자 챙기느라 할머니 손이 더 분주합니다. 할머니에게 보여 드릴 동영상이 있는데…. 대청마루에 앉는 할머니를 기다렸다가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성윤 씨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이게 우리 윤이가? 기계 돌리는가, 팔을 막 돌리고 그라네.”
일하는 가게는 어디고, 어떤 일을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하는지… 할머니는 영상을 보며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일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눈으로 보기는 처음입니다. 들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눈으로 보니 더 궁금하고 대견했는지 할머니는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성윤 씨가 고등학교 졸업하고(2013년 2월) 직장 구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시설에서 그저 편안하게 지내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도 그랬습니다. 서툴러서 혼날까봐, 실수해서 피해 입힐까봐, 그래서 남에게 손가락질 당할까봐 그랬다고, 할머니가 나중에 말했습니다.
첫 번째 직장은 고등학교 내내 단골로 다니던 미용실이었습니다. 미용실 사장님이 성윤 씨 사정을 듣고 채용했습니다. 1년 7개월(2013년 12월~2015년 6월), 미용실 문 열기 전에 미용실 직원들과 청소하는 일을 했습니다.
할머니는 미용실에 들러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했고, 손자가 하는 일을 들었습니다. 사장님이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는, 시내 한가운데 번듯한 가게에서 손자가 일했습니다. 그때, 당신 손자도 남들처럼, 뉘 집 손자처럼 일할 수 있다는 걸 봤습니다.
미용실 사정으로 그만둔다고 하니, ‘시설에서 그저 편안하게 지내기 바란다’ 했던 할머니가 ‘어디 다른 데 알아봐야 할 텐데….’ 하고 걱정했습니다. 일 년 뒤, 지금 일하는 레스토랑 ‘요리하는남자: 요남자’(2016년 6월부터)에 취업했습니다.
레스토랑 사장님에게 여름휴가 신청했고, 휴가 때 할머니와 여행 가고 싶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크게 웃었습니다.
저녁은 마당에서 먹었습니다. 천막을 깔고 밥상을 차렸습니다. 성윤 씨가 준비한 삼겹살과 할머니 텃밭의 야채로 풍성했습니다. 블록 벽돌 위에 넓적한 돌을 얹고, 그 아래 장작을 피워 돌을 달궜습니다. 돌판 위에 삼겹살을 구웠습니다. 할머니는 프라이팬 대신 돌판을 냈습니다.
저녁을 먹고 할머니 댁 안방에서 성윤 씨 여름휴가, 할머니와 여행을 의논했습니다. ‘할머니, 여행, 부산, 해운대.’ 성윤 씨가 적은 메모를 할머니에게 보였습니다. 손자가 글을 잘 읽고 잘 쓴다고 칭찬하면서도 가겠다는 말씀은 없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도울 사회복지 전공 대학생도 있고, 시설 직원도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손자는 손자대로 당신은 당신대로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성윤 씨와 잘 의논해서 준비할 테니 염려놓으시라고 했습니다.
“성윤 씨, 할머니와 여행 가고 싶어요?”
“할머니, 여행, 부산.”
“성윤이 덕에 이 할미 부산 가겠네.”
할머니가 웃으며 가겠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성윤이 덕’이라고 했습니다. 손자가 대견하고, 손자를 대견해 했습니다. 복지시설에 갔다더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도 없이 그저 그렇게 잊히는 존재, 꺼내지도 끄지도 못한 채 가슴 한구석 불덩이로 남은 존재, 그런 존재로 여기지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여행까지 보름 남았습니다. 준비할 게 많습니다. 무엇이든 성윤 씨를 앞세워서, 성윤 씨의 강점과 장점을 살려서, ‘우리 윤이 덕에 할미가 부산 가겠네.’ 했던 할머니의 말씀을 이루고 싶습니다.
성윤 씨는 자폐성장애가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말할 때는 단어를 나열합니다. ‘할머니, 고기, 삼겹살’ 하면 ‘할머니 댁에 삼겹살 사서 가고 싶다’는 뜻으로 짐작합니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데, 글도 단어를 나열합니다. 컴퓨터를 잘 다룹니다. 주로 게임을 하고 야구 동영상을 봅니다. 큰 키에 잘 생긴 얼굴, 과격하지 않고 섬세하며(누구는 소심하다 했지만) 잘 웃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고등학교 때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여행 관련 책을 여러 권 봤습니다. 여행지, 교통편, 여행 준비 같은 정보를 살폈습니다. 글을 안다는 것이 이름 석 자 쓰는 추상에 머물지 않고 자기 여행의 실제에 쓰였습니다.
종종 들르는 PC방에서 여행 정보를 찾아봤습니다. 해운대 사진, 숙박 정보, 교통편, 부산 여행 코스를 두루 살폈습니다. 부산시청 홈페이지에 성윤 씨 이름으로 ‘관광 안내 책자’를 신청했습니다. 컴퓨터를 다룰 줄 안다는 것이 야구 중계방송을 보고 또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여행의 실제에 쓰였습니다.
휴가 때 입을 옷을 샀습니다. 선글라스도 샀습니다. 단골 옷 가게 사장님이 코디를 자청하여 여러 벌을 갈아입혔습니다. 모델 뺨치듯 모든 옷을 소화했습니다. 거울에 비춰보고 성윤 씨 표정을 살폈습니다. 사장님의 추천을 거두고 성윤 씨는 자기 스타일을 골랐습니다. 사장님이 부채와 우산을 덤으로 줬습니다.
중간 중간 할머니에게 준비 상황을 알렸습니다. 성윤 씨와 할머니가 준비하는 여행이게, 성윤 씨와 할머니의 여행이게 돕는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할머니, 부산 여행.”
“그래, 부산!”
성윤 씨의 짧은 보고에 할머니가 응원을 보탰습니다.
‘여행 가이드북’을 만들었습니다. 스케치북에 지도, 교통, 일정을 적었습니다. 부산 지도를 출력해 성윤 씨가 오리고 붙였습니다. 투박하고 멋집니다. 여행지에서 할 것을 그림으로 표시하고 색연필로 적었습니다.
‘DAY 1: 부산터미널부산역태종대해운대할머니 부산. DAY 2: 해운대아쿠아리움거창할머니 요남자.’
성윤 씨가 여행 일정을 적으면서 한 눈에 익히고 정리하기 바랐습니다. 성윤 씨는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며 이웃과 직원들에게 자랑했는데, 자기 여행으로 여기고 준비한다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다른 일에도 적용하면 유익하겠다 싶습니다.
여행 가는 날, 아침 일찍 할머니 댁에 갔습니다. 거창터미널까지 모셔왔습니다. 성윤 씨가 할머니에게 모자를 선물했습니다. 자기 옷 사면서 준비한 겁니다.
“밭에 갈 때 쓰는 모자만 있는데, 고맙다.”
“성윤 씨가 직접 고른 모자예요.”
“예뻐?”
“예쁘다. 흐흐흐.”
모자는 할머니에게 잘 어울렸습니다. 모자는 여행 내내 제 몫을 했습니다. 할머니는 모자를 손자만큼 귀하게 다루었습니다. 시티투어 이층버스에서 모자가 날아갈까 손으로 붙들었고, 바람 많은 곳은 벗어서 손에 꼭 쥐었습니다. 할머니가 들고 온 양산은 한 번도 펴지 않았습니다.
“날아가면 안 되지. 윤이가 사 줬는데.”
부산역에 내려 시티투어 이층버스를 탔습니다. 이층버스는 부산항대교를 넘으며 바다를 가로질렀습니다. 성윤 씨 이름으로 성윤 씨가 예약한 호텔에, 성윤 씨가 직접 서명하고 체크인 했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곧장 해운대 백사장에 갔습니다.
“사진 주세요.”
성윤 씨가 나서서 사진을 찍어 달라 했습니다. 처음입니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쫓으며 성윤 씨가 물 가까이 갔습니다.
“물이 안 무섭나 보네. 훈아, 신발 벗고 웃옷 벗어 두고 갔다 와.”
할머니 허락을 기다렸다는 듯, 성윤 씨는 웃옷을 벗고 바다에 들어갔습니다.
둘째 날은 계획대로 아쿠아리움에 들렀습니다. 아쿠아리움 실내 보트장에서 투명 보트를 타고 상어 수족관 위를 다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성윤 씨가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손자 일하는 곳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그곳에서 할머니에게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훈아, 너 여기서 일하나?”
“요남자. 요남자.”
“핸드폰에서 보셨던 장소가 여기예요. 성윤 씨는 유리창 닦아요.”
“할머니, 음식이 입에 맞으세요?”
“별 음식을 다 먹어 보네. 좋아.”
“스테이크. 스테이크.”
“윤이가 사 주는 음식을 다 먹고…. 고맙다, 훈아.”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사장님에게 손자 잘 부탁한다고 할머니가 당부했습니다. 할머니의 당부에 성윤 씨가 잘한다고 사장님이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를 댁까지 모셔다 드리고 돌아서며, 성윤 씨가 할머니에게 쓴 엽서를 꺼내 읽었습니다.
“할머니 카네이션 부산 여행 버스 해운대 아쿠리움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성윤이가.”
할머니가 웃었습니다.
할머니도 지난밤 성윤 씨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손자가 잠든 호텔방에서 할머니는 편지를 썼습니다. 할머니 말씀처럼 ‘손자 생각만 하면 손자 얼굴만 보면 미안하고 부족한’ 마음을 꾹꾹 눌러 가며 할머니는 손자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성윤이가 할머니와 부산 여행을 와서 2층 버스를 타고, 해운대해수욕장 와서 구경도 잘하고, 저녁 식사 후에 야구 연습장에 가서 성윤이가 야구 잘 치고 너무도 기뻤다. 할머니도 성윤이가 야구 치는 모습을 바라보니까 기쁘기가 한량없다.
호텔 숙소에 들어와 윤이 하고 자고, 다음 21일 수족관 구경을 할 예정이다. 부산 여행 마치고 오후에는 거창 도착. 저녁 식사는 윤이 직장 다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할머니는 집으로 간다.
할머니는 성윤이랑 이번 여행을 잊지 않겠다. 성윤이 쳐다보면 미안 부족한 성윤 할머니가.』
할머니는 이번 여행을 잊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손자를 쳐다보면 미안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손자 덕을 본다고 했습니다.
※2016년 여름, 울산 고모 방문을 시작으로 대구에서 여동생과 아버지와 하룻밤, 할머니와 1박 2일 부산에 다녀오며 성윤 씨는 일주일 동안 여행했습니다. 사회복지 전공 대학생 두 명이 성윤 씨를 도왔습니다. 그때 기록을 모아 "내가 여행하는 이유"라는 책으로 출판했습니다. 이 글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를 참고하여 썼습니다.
"내가 여행하는 이유" 교보문고 책 소개: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97143719&orderClick=LAG&Kc=
칼럼니스트 박시현 (refree@welfare.or.kr)
* 이글은 한국장애인시설협회 및 에이블뉴스(2017-08-09)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