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여전도회 나들이, 인천대교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월평빌라' 이야기-32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09-14 09:22:09
교회 여전도회에서 나들이를 갑니다. 완공도 하지 않은 다리를 보려고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는 소문과 그 다리는 바다에 떠있고 공중에 걸려 있다는 풍문을 듣고 인천대교에 가기로 했습니다. 서른 명 남짓, 관광버스 한 대를 빌려서 다녀왔습니다. 월평빌라 사는 강자경 씨와 김성요 씨도 함께했습니다.
강자경 씨와 김성요 씨는 자매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한 시설에서 자랐고, 호칭은 자연스레 언니 동생이라 합니다. 2009년 9월 1일, 월평빌라에 한날 입주했습니다. 월평빌라에서도 신앙을 이어가게 했는데, 교회도 한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교회 등록하고 여전도회에 가입한 지 한 달 남짓. 첫 교회 행사이자 여전도회 행사에 참여합니다. 등록한 지 한 달이더라도 교인이고, 가입한 지 한 달이더라도 여전도회 회원입니다. 그러니 이번 나들이는 교인 자격으로 회원 자격으로 가는 겁니다. 이번 기회에 회원들과 인사하고 알고 친해지기 바랐습니다.
관광버스는 7시 30분에 읍사무소에서 출발했습니다.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어깨가 움츠러들었습니다. 먼저 온 교인들은 제각각 인사하며 버스에 오르고, 버스 밖에는 회원을 마중하고 짐 챙기는 사람들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강자경 씨와 김성요 씨는 ‘자매님 집사님 권사님’ 하는 틈에 어물거리다가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는 동안 까만 봉지를 하나씩 나눠줬습니다. 떡, 물, 음료수, 바나나, 과자, 쿠키, 사탕이 들었습니다. 과자와 쿠키와 사탕은 몇 개씩이어서 오가며 먹고 나들이 마치고도 남았습니다. 까만 봉지는 하루 일정을 헤아린 정성이었습니다.
버스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사회자가 나서서 각자 소개하게 했습니다. 누구는 이름만 말하고 누구는 노래를 했습니다. 김성요 씨는 자기 차례가 되자 일어나 마이크를 건네받았습니다. 나이를 말하고 월평빌라에 산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사 온 지 두 달 못 되니 월평빌라 산다는 말이 어색했을 겁니다.
그즈음하고 앉을 줄 알았는데 노래를 했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가사 틀리지 않고 끝까지 불렀습니다. 교인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시설에 사는 사람, 지적 장애가 있다고 들었는데 하는 선입견이 환호와 박수를 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자경 씨는 이름만 말했습니다.
버스는 12시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고 안개가 짙어 다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버스에서 점심을 먹고, 유람선을 탔습니다. 유람선은 1층 공연장, 2층 디스코장, 3층 카페로 층마다 분위기와 용도가 달랐습니다. 강자경 씨와 김성요 씨는 3층 카페에서 바다를 봤습니다. 유람선은 인천대교 아래를 가로질렀습니다. 비는 가늘어졌고 안개는 옅어졌고 풍랑은 요란하지 않았습니다. 다리가 바다에 떠있고 하늘에 걸려 있다는 말은 참말이었습니다.
김성요씨와 강자경 씨가 같이 가도 되겠냐고 총무에게 묻고 부탁할 때부터 부담이 있었습니다. 시설 직원도, 교회 교인들도 고작 몇 번 만났습니다. 사람 알고 사귈 기회라 했지만 서로 모르는 게 걱정이었습니다. 첫 장거리여행이라 멀미하지 않을까, 지루하지 않을까, 실수하지 않을까, 뜻밖의 행동을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여전도회 회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며 대처할까? 이제 겨우 두 달 다녀서 아는 사람도 없고 기댈 사람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게 가장 큰 염려였을 겁니다.
그런 염려는 ‘기우’였습니다. 동행했던 최희자 선생님은 기우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슬비와 옅은 안개가 운치를 더하듯 시선에 따라 다르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부족한 듯한 가운데 채워지고 거기에 감동할 때가 있습니다. 잔잔한 풍랑은 유람선을 띄우는 데 아무 방해가 되지 않지만 잔잔한 풍랑마저 두려워하면 결코 배를 띄울 수 없습니다. 이번 나들이에서 시선과 감동, 용기를 얻었습니다.
강자경 씨와 김성요 씨는 평안해 보였습니다. 여전도회 회원들이 아침부터 내내, 버스와 휴게소 어딜 가든 많이 챙겨주었습니다. 노래할 때 박수를 보냈고, 먹을 것을 나눴고, 휴게소에서 쉴 때 도왔습니다. 회원들이 돕는 모습에 용기가 생겼습니다. 나들이 마치고 인사할 때, 교회에서도 관심 갖고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시설 직원이 없을 때도 관심 갖고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휴게소에서 저녁 먹고 거창에 도착하니 밤 10시였습니다. 인천은 먼 길이었습니다. 아침에 어물거리며 버스 탔던 읍사무소 앞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출발할 때 서먹했던 강자경 씨와 김성요 씨와 회원들은 도착할 때쯤 꽤 친해졌습니다. 회원들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인사했고, 자경 씨는 내일 교회 가겠다는 말로 화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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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이야기입니다. 월평빌라 문을 열고 1년 남짓 되던 때였습니다. 시설에 살더라도, 시설 입주자의 삶도 여느 사람 같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여느 사람처럼 산다는 개념이 쉽지 않았을 뿐더러, 그렇게 지원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시설에 살든 그렇지 않든, 장애인의 나들이는 단체 나들이가 보통인 양하는 시절이었습니다. 월평빌라도 언제 한 번 단체로 나들이했는데, 구경하는 건지 구경 당하는 건지 모르는 비통함을 느꼈습니다. 그 후로는 단체 나들이를 삼갔습니다. 무슨 활동이든 가능하면 개별로 하게 도우려했고, 나들이도 개별로 하자 했습니다.
개별 나들이는 어떤 모습인지 궁리할 때, ‘입주 장애인과 시설 직원과 봉사자 여러 명 가는 게 단체 나들이라면 입주자와 시설 직원과 봉사자 서너 명 가는 게 개별 나들이다’는 개념에 머물 때, 개별 나들이가 무엇인지 최희자 선생님이 보여주었습니다. 선명했습니다.
직원 봉사자 입주자만의 나들이 그만하고 가능하면 입주자가 속한 가족, 교회, 학교, 동아리에서 가는 나들이에 일원으로 가기를 권합니다. 최희자 선생님이 여전도회 나들이를 주선한 것처럼, 두 분이 제일교회 성도로 여전도회 회원으로 다녀 온 것처럼 말입니다.
나들이 준비부터 마치기까지 제일교회 여전도회가 주최하고 주관했습니다. 장애인의 나들이, 주거, 교육, 취미, 직업… 시설에서 우리가 알아서 다 하겠다 하지 말고 가족, 이웃, 학교, 교회, 학원… 지역사회가 감당하도록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의 사명이고 힘써 해야 할 일입니다.
여전도회 나들이는 몇 해 쉬었다가 2013년 여수 아쿠아리움, 2015년 통영 장사도, 2016년 경주 감포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강자경 씨와 김성요 씨는 매번 함께했습니다. 시설 직원이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여전도가 먼저 챙겼고, 시설 직원이 동행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제 그 정도가 되었습니다.
거창제일교회 여전도회 나들이 덕분에 월평빌라 입주자의 나들이 개념이 선명해졌습니다. 시설에 살더라도 여느 사람처럼 나들이한다는 개념이 분명해졌습니다. 가족 피서, 교회 나들이, 학교 소풍 수학여행, 동아리 단풍구경, 친구와 기차여행… 이런 것이 월평빌라 입주자의 나들이입니다. 시설이든 어디든, 장애인의 나들이가 이와 같기 바랍니다. 여느 사람처럼….
※ 2009년부터 지금까지 강자경 씨와 김성요 씨를 지원하는 최희자 선생님의 말과 글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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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박시현 (refree@welfare.or.kr)
* 이글은 한국장애인시설협회 및 에이블뉴스(2017-09-14)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