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7일 충남 천안시 쌍용2동주민센터에 청년 하나가 들어섰다. 27세로 뇌병변·언어장애가 있는 중증장애인 홍성표씨였다. 복지 담당 공무원을 찾아간 그는 작고 느리며 어눌한 목소리로 물었다.
“기초수급자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홍씨는 13년 넘게 기초생활보장수급자였다. 초등학생 때 어머니, 중학생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매달 약 50만원의 생계비가 국가에서 나왔다. 전화요금·전기료·의료비 등 20여 항목도 감면·할인 혜택을 받았다.
이런 혜택을 더는 받지 않도록 생계비·주거비·의료비 수급 대상에서 빼 달라고 홍씨가 요청한 것이다. 담당 직원은 믿기지 않는 듯 “예?” “예?”를 반복했다.
저소득층의 소득이 추후에 높아져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탈(脫)수급’은 종종 있다. 이런 경우에도 기초수급자는 흔히 반발한다. 2012년 추가 소득이 발견돼 생계비 지원이 20만원 깎인 비장애인이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청에 찾아가 담당 공무원에게 흉기를 휘두른 적도 있다.
취업 성공 후 스스로 기초수급을 포기한 중증장애인 홍성표(27)씨가 25일 충남 천안 한들문화센터 내커피숍 '아이갓에브리씽(I got everything)'에서 손님과 반갑게 얘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홍씨 같은 자발적 ‘탈수급’ 신청은 극히 드물다. 탈수급 조건이 드러날 때까진 종전 혜택을 받으려고들 한다. 홍씨 사례를 접한 양동교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장은 “기초수급자에서 자발적으로 빠져나가는 사례를 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기초수급자는 현재 163만 명에 이른다.
홍씨가 탈수급을 신청한 것은 그가 생애 첫 월급 90만원을 받은 이튿날이었다. 그는 지난 4월 천안시 한들문화센터 1층에 있는 커피숍 ‘아이갓에브리씽(I got everything)’에 취직했다.
지난 25일 중앙일보가 찾아가 보니 그는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있었다. 시종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현금통에서 거스름돈을 꺼내는 데도 시간이 다소 걸렸다. 하지만 손님은 그다지 불편해하지 않는 듯했다. 이 커피숍은 한국장애인개발원(원장 황화성)이 장애인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연 전국 14개 지점 중 하나다. 홍씨가 2015년 2월 졸업한 나사렛대학교의 나사렛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가 위탁을 받아 운영 중이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홍씨는 졸업 2년2개월 만에 요즘 표현대로 ‘취뽀’(취업 뽀개기, 취업 성공을 의미)를 했다.
“장애인들은 일상적으로 거절당하며 삽니다. 충주에서 천안으로 이사 왔을 때 고등학교들이 제 전학을 받아주지 않아 1년 쉬다가 방송통신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했어요. 대학 졸업 후 면접을 몇 군데 봤는데 다 떨어졌어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장애만 보는 것 같아요.”
나사렛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사무국장이며 커피숍 점장이기도 한 김종민씨가 그에게 커피숍 일을 제안했다. 홍씨는 자기에게 맞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 거절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 일단 실습부터 해보자”고 재차 김씨가 제안했다. 막상 도전해 보니 주문을 받고 돈 계산이나 청소를 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20일간 실습을 거쳐 홍씨는 지난 4월 정규직 입사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는 무슨 마음에 탈수급을 신청했을까.
“내가 출근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어요. 남들이 보면 연봉 1080만원이 대단하지 않을 거예요. 장애인으로서 자립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진로를 결정하며 힘든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기쁨이 컸어요. 내 힘으로 월급을 벌어 생활하니 지금이 더 행복해요.”
그는 “기초수급에만 기대고 있기는 싫었다. 기초수급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이 직장이 내 출발점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딘가에 또 분명히 있을 거예요. 장애가 있다고 가만히 숨어 있지 말고 나와서 움직이다 보면 길이 생긴다고 믿어요.”
그는 첫 월급에서 38만원을 떼 자전거를 샀다. 자기를 위해 수십만원을 쓴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이제 매일 자전거 페달을 밟아 출퇴근한다.
- 중앙일보 2017.07.28 뉴스 기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