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밥보다 사람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월평빌라' 이야기-29
"생존훈련, 독립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생애 첫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이사하는 날, 공교롭게도 서른여섯 생일이다. 직원의 마음도 이렇게 분주한데, 대수 씨는 밤잠을 설치지 않았을까? 방안에 있던 짐과 옷을 담았다. 종이 상자 3개에 다 담겼다. 서른여섯 청년의 살림으로는 너무 가볍다. 1톤 트럭에 한가득 싣고도 모자랐으면…. 마음이 찡하다.
한솥밥 먹던 월평빌라 이웃과 직원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니며 떡을 돌렸다. 감사 인사 겸 송별 인사를 했다. 누구는 잘 살라는 덕담을 건넸고, 누구는 선물을 건넸다.
8년 머물렀던 방을 정리하고 직원의 자가용에 이삿짐을 실었다. 월평빌라에서 자취방 ‘학당골’까지 3Km, 자가용으로 5분.
이사하고, 필요한 물건 사고, 시장 봐서 반찬 만들며 하루 종일 분주히 움직였더니 직원은 녹초가 되었다. 저녁밥 짓는 대수 씨는 여전히 생기 가득하다. ‘대수 씨, 잘 살아요. 파이팅!’ 「2016년 6월 5일 일지, 임경주. 발췌 편집」
이대수 씨가 서른여섯 생일에 자취를 시작합니다. 월평빌라 입주 8년 만에 독립합니다. 월평빌라 10년 역사에 여섯 번째입니다.
이대수 씨는 여덟 살 되던 해, 무슨 영문인지 부산 영도구 어느 시설 앞 길거리에 혼자 남겨졌습니다. 뇌성마비를 앓았고, 어렸을 때는 보조기가 있어야 걸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걷지 못하고 말 못하는 아이가 길거리에 혼자 남겨진 거죠. 가까운 시설에 잠시 머무르며 가족을 찾겠다는 게 지금까지 시설에서 지냅니다. 부모형제 소식은 아직 모릅니다.
지금은 보조기 없이, 서툴게 걷습니다. 양팔을 안팎으로 휘젓고, 걸음마다 휘청거리니 보는 사람이 조마조마합니다. 오르막 내리막은 아주 위태하고,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설 때도 불안정합니다. 계단은 벽이나 손잡이를 짚고 오르내립니다. 말은 못 해도 질문을 하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가락으로 자기 뜻을 분명히 밝힙니다. 자기 이름 정도는 쓸 줄 알고요.
2009년 6월 29일, 월평빌라에 입주했습니다. 그전에는 부산에 있는 복지시설 두 곳에서 살았습니다. 스물여덟 청년이었지만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해 7월, 월평빌라 인근 아림고등학교에 전학했고, 2011년 2월에 졸업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모교를 찾아가 은사님을 뵙고 후배들을 만납니다. 운명인지 우연인지, 자취방이 아림고등학교 정문 맞은편입니다.
월평빌라에서도 대수 씨의 신앙을 이어가게 도왔습니다. 인근 교회를 수소문하고 대수 씨와 방문하여 대산교회에 등록했습니다. 지금까지 잘 다닙니다. 교회에서는 성실한 청년으로 인정받습니다. 예배당 신발장의 신발 정리는 대수 씨 몫입니다. 교회에서 메주 쑤는 날에는 간식 사서 가고, 서툰 발걸음 서툰 손짓으로 한몫 톡톡히 합니다. 교회 나들이, 절기 예배, 임직식 같은 교회 행사에 빠지지 않습니다. 목사님은 심방이나 지나는 길에 대수 씨 집에 종종 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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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원문 보기 http://abnews.kr/1FLj
* 이 글은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협회동향 310에서 발췌하였습니다.